이 시대의 양심으로 불리우고 있는 전원책 변호사는 경상남도 울산군 대현면 여천리(現 울산광역시 남구 여천동)에서 아버지 전성학과 어머니 김태선 사이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후 대현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66년 2월에 졸업한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울산학생백일장에서 ‘돌’이라는 제목으로 처음으로 문예 부문에서 수상하며 어린 시절부터 문예 활동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고 하네요!
부산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문예반장을 지내 문학에 심취하여 학원문학상과 여러 백일장에서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재수 생활 중에 루소, 키에르케고르, 칸트 등 근대 이론가들의 철학을 독학으로 읽은 것이 오늘날 그가 이 시대의 마지막 행동하는 양심가로 불리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종로2가 관철동에서 철학 공부를 위하여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였고 1975년 3월에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법률학과에 입학하였고 1979년 2월에 졸업한 군 법무관을 지낸 후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그가 내 놓은 시집은 많은이에게 공감있는 삶을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전 변호사는 또 경희대학교 재학 중인 1977년에 제2회 백만원고료 한국문학신인상을 연작시 ‘동해단장(東海斷章)’으로 수상하여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하였으며 1978년에는 ‘한국문학’에 시 ‘전망(展望)’을 발표하는 등 문단활동을 꾸준히 하였다고 합니다!!
1980년에 문학 활동을 중단하였다가 6년 후인 1986년에 다시 집필 활동을 시작하여 시 ‘나무를 꿈꾸며’, ‘여섯시는 연극이다’ 등을 썼 문단의 천재 등장이란 극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전 변호사는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1982년 30사단 법무참모로 군 생활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군 시절 전원책을 상관으로 모신 한 정치인은 훗날 인터뷰에서 “전원책 변호사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머리가 비상하고 일간지 문학공모전에 당선됐을 만큼 로맨틱하고 감성이 풍부한 분”이라고 회고했습니다!!! 이후 1991년 9월 30일 6군단 법무참모직을 마지막으로 10년 6개월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해 서울 법원 앞에서 변호사를 개업한 바가 있습니다!
사법시험 합격한 적 없구요. 군법무관 시험이라고 박통때 군인들의 충성을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으로 대위 이상으로 예편하면 유신사무관이라고 행정고시 패스와 동급의 공무원 자리를 보장 받았습니다. 또한 군법무관 시험이라고 사법고시와는 급이 다른 시험을 통해 군에서 법무관으로 일정기간 복무하면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과 동등한 혜택을 주었죠. 전원책은 군 법무관 출신입니다. 사법고시와는 거리가 멀죠.
답글삭제사사출신 미필자들은 군법무관을 단기복무하고 거의 제대해버리기 때문에 장기복무 법무관(군판사, 군검찰관, 법무참모) 선발을 위해 2005년까지 군법무관시험이 있었습니다. 응시자격에 제한이 없었기때문에 유신사무관같은거하고는 전혀 성격이 다르구요. 사시하고 과목도 같고 합격하면 사법연수원도 수료했습니다. 10명 내외만 뽑아서 아주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답글삭제사법시험보다는 컷이 낮았지... 군법 합격하고 10년 복무해야 변호사 자격이 나오는 것이었으니... 실제 컷도 낮았음.
답글삭제ㅉㅉㅉ..모르면 그냥 가만히 좀 일어라.
답글삭제군법무관시험은 사법시험과 시험문제,시험장소,
시험일자 모든게 같았다.
다만 기존에 사법시험 합격자가 워낙 작아
장기 군법무관을 양성하기 위해 별도로 선발한거임. 2000년도부터 사시합격자수가 많아 오히려 사시보다
군법무관시험이 합격점수가 더 높아지면서
2005년도에 폐지된거고 군법무관시험 합격하면
군법무관시보라고해서 사법연수원 위탁교육 마치면
바로 변호사자격증 나온다.
다만 위탁교육 후 8년이내에 전역 시 변호사자격이 취소되는거지...제발 모르면..
님이 잘 아시네요 잘 모르는 머가리에 우동사리만 들어찬 개돼지계두들이 설치니까 이나라가 이모양 이꼴이지
삭제잘못 작성되었는데요. 사시출신 아닙니다. 그 당시 사시에 비하면 간극이 큰 고시 중에서도 하급시험이었습니다. 사시 합격자 수가 어마어마하게 적을 무렵 사시합격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주로 가던 지금으로 치면 행시는 안 되니 7급 공무원 시험치는 그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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